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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매산서원 춘향제 봉행

기사입력 2013.04.2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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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산서원 춘향제 봉행

    삼우당 문익점, 목은이색 추모

    21일 오전 11시부터 능서면 번도리 321-4의 매산서원에서 춘향제가 봉행되었다.



    초헌관으로 김춘석 군수
    , 아헌관에 이환설 의원, 종헌관에 문영일 종친이 맡았다.







    매산서원은 삼우당 문익점(1329-1398)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경남 거창과 산청 지방 유림의 공의로 건립되었는데 병자호란 때 후손 문겸(文謙) 선생이 여주로 이건(移建)하여 봄, 가을에 제향을 봉행하고 있으며, 목은(牧隱) 이색(李穡)선생을 함께 모시고 있다.

    죽부인전(竹夫人傳)을 쓴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은 이색의 아버지이자 문익점의 스승으로서 두 분의 인연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익점은 1368년 덕흥군과 최유의 난으로 3년간 교지(베트남)로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원나라에서 목화 씨앗을 가져온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목화로 짠 무명이 원나라에서 수입되었으나 고가라 백성들은 입을 수가 없어 추위에 시달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씨앗을 가져온 문익점은 장인 장천익에게 재배를 부탁했고, 손자인 문래에게 실을 뽑는 기계제작을 부탁하여 방추거를 완성했다.

    또한 문래의 동생 문명은 천을 짜는 기계를 개발하여 무명으로 옷을 해 입을 수 있는 기틀을 완성하였다.

    그 이후 염색을 하지 않은 흰 무명을 우리 민족이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는 지칭을 듣게 되었고, 조선에서는 문익점을 충선이라는 시호와 함께 부민후로 추증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를 모셨다.

    율곡 이이는 신농은 백성들에게 밭갈이를 가르쳤고, 후직은 농사일을 가르쳤다. 충선은 우리 백성들의 의복을 해결했으니 그 공은 신농이나 후직의 곱절이다라고 갈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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